늙었다는 것, 오래된 것, 나이 든 것 모두 한국에서는 죄악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이렇게 모두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제 사진에서 보이는 이런 길을 찾아보기 점점 힘들다. 개발 논리에 밀려서 모두 회색빛, 가까이서 사진 찍으면 전국 어디에 있는 건물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고층 아파트로 대체된다. 오래된 동네나 집뿐만이 아니다. 오래된 유적지, 역사적 장소, 상징적 물체 모두 기억에 남을 정도만 남기고 구석으로 그리고 주위를 빙 둘러싼 아파트, 상가에 의해 존재감은 사라진다.
오로지 기능만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의 핏줄이 아니랄까 봐 경제 논리, 편의성을 앞세워서 개선보다 획일성, 경제성을 추구하는 행태를 보면 어질어질하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잠깐 기능성의 측면에서 식당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대부분의 식당은 맛있게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김치찌개는 김치와 재료만 들어가면 정의상 김치찌개는 맞다. 식당은 이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맛이 있건 없건 그건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지 어쨌건 김치찌개를 서비스했으니 기능은 만족한 것이며 제시하는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가 대부분의 식당 주인들의 논리인 것 같다.
맛집이라고 알려진 집에가서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 이젠 감동이 느껴질 지경이다.
국가 R&D 나 계약에 의한 용역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목표는 오로지 RFP 만족이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경량화, 모듈화 시키고 재사용 가능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없다. 몇 년 전 참여했던 국가 R&D의 결과물이 기억난다. RFP는 만족시켰지만 거대하고 투박하고 무거운 결과물을 보고 식겁한 일이 있다. 이미 수차례 권고를 했고 제안을 했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스펙 만족이라고.
소프트웨어 관련 직업도 마찬가지다. 개발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모두 정확하게 정의를 내려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늙은'이란 단어가 앞에 붙으면 곧 제거되어야 할 사람으로 인식한다. 비단 소프트웨어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산업에서 종사하는 개인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젊었을 때부터 나이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나이가 한국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사실 한국에 살면 자기 나이 구태여 카운트할 필요가 없다. 2024년에서 자기 탄생 년도를 빼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게 주위에서 쉴 새 없이 나이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생각이 되게 젊으시네요 나이에 비해서.. 란 말은 셀 수 없이 들었다. 나이와 아이디어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만 웃긴 게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웃으면서 이런 발언을 한다.)
소프트웨어 분야가 유독 젊은 층들이 주축이 되는 곳이라 그런지 몰라도 늙은 개발자에 대한 이런 인식은 다른 업종에 비해 유독 심한것 같다. 특히 몇 년 개발 경험을 하고 자신감이 충만한 초급자들에게 이런 경향이 많은데 사실 시니어 엔지니어도 원인 제공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흔히 말하는 실력만 뒷받침되면 문제는 없지만 나이만 많지 하는 일은 주니어와 같다고 한다면 존경할 주니어가 어디 있겠냐만 문제는 고급 관리자의 눈에도 이런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앞날이 그리 밝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런 압박적인 분위기와 상황이라면 시니어 입장에서도 편안한 자리는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피치못하게 일을 계속해야 할 수도 있으니 겉만 보고 그 사람이 버티는(?) 의도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이는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된다. 같은 퍼포먼스하에서 비용이 같다고 쳐도 나이라고 하는 파라미터가 고려되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아예 180도 달라진다.
이제 AI의 시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것 같다. 소프트웨어는 패턴을 이용해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작업이다. 패턴을 찾아내는 것은 AI의 기본 원리이다. 가까운 미래에 대체될 직업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상위권에 언급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상당량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절차는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늙은 개발자를 낮추어 보는 젊은 개발자나 관리자들은 AI를 상대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AI는 패턴을 가진 직업은 모두 대체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산업용 로봇을 보면 알 수 있다. 산업용 로봇은 단순 반복 패턴을 위한 것이다. 패턴을 가진 직업은 변호사, 판사, 약사, 의사등이 해당이 되는데 대체 가능성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런 직업들은 지금이라도 대체 시도를 해 볼만하다. 소프트웨어 개발도 마찬가지다. 알고리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코딩 테스트가 왜 필요한가? 패턴이 알고리즘인데.
근데 패턴이 없는 직업은 어떨까? 이를테면, 예술 창작, 퍼포먼스에 해당하는 직업은 대체가 불가할 것으로 본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패턴이 없는 절차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분석이다. 분석은 설계와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며 패턴을 가지기가 힘들다. 아마도 시스템 분석가라고 하는 직업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에 의해 존재할 것으로 본다.
늙은 개발자는 분석에 강하다. 아니 강해야 한다. 아니 지금쯤 자연스럽게 강해져 있어야 한다.
이렇지 않은 늙은 개발자는 젊은 개발자/관리자 들을 상대해야 함은 물론 AI 도 앞으로 상대해야 하는 험한 길이 펼쳐져 있다.
개발자만 해당되는게 아니다. 패턴을 가진 전 직업군에서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래저래 재미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늙은 개발자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내 방에 가면 혼자 중얼거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늙은'이란 단어를 단지 누군가를 낮추어 부를 목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는다면 차라리 사람보다 영혼 없는 AI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지금도 AI를 상대하는 것이 재미있지만 앞으로 어쩌면 조금은 비관적이지만 영혼을 가진 AI 가 등장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까지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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