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풍요로웠던 마지막 프로젝트

일상

왕모,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수지잡스 2023. 12. 8. 09:17

이 다큐멘터리는 2017년 KBS에서 방영된 것인데 왕모라고 하는 히말라야 지대에서 사는 16세 소녀가 주인공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많은 형제들과 생활하게 되고 돈이 없어 학교도 못 가고 잘 먹지도 못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니 미래가 있긴 있었다. 주위의 (아무)남자에게 일찍 시집가서 본가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예상되는 미래였다. 

 

 

 

왕모는 이때 출가하기로 결심하는데 이게 어떤 이유에 의해서인지는 잘 모른다. 가족의 생계 때문인지 아니면 티베트이라는 나라의 문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알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두 개가 얽혀있는 복잡한 이유인 것 같다. 16세라는 나이를 감안하고 따뜻한 감성의 소녀라는 사실 때문에 생계 때문이라는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닌가 하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는 소녀다.

 

 

 

정말 압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광경이 자주 나오는 다큐라서 기억에 남는데 왕모가 바라보고 있는 저 호수, 하늘, 산은 정말 그림과 같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7일간 200km 의 히말라야 순례길, 패드 야트라에 나선 왕모 일행이다. 이 장면도 역시 기억에 많이 남는데 16살 어린 소녀인 왕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머니의 죽음 후 다시 절로 돌아가는 왕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순례에 나서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오체투지 하면서 라사로 가는 순례객들에 관한 다큐는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인데 자신과 중생의 안녕을 위해 한다는 사람, 가족의 건강, 다음 생의 행복등과 같은 이유를 말하는 것을 봤는데 내 생각에 순례의 목적은 아무 생각을 떠올리려 하지 않으려는데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생각이란 게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조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데 우리가 아는 명상이라는 방법 역시 생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주의를 딴 데로 돌려서 생각을 피하는 게 목적이다. 불교에서 토굴에 처박혀 수행하는 것도 결국엔 생각을 피하고 조절하기 위한 짓이다. (한국 불교는 희한하게 동문서답, 이심전심과 같은 황당한 짓을 많이 하는데 싯달타 부처가 원한 건은 이게 아니었다. 머리 나쁘면 불교 믿으면 안 된다.)

 

 

 

포레스트 검프도 마찬가지다. 상실감에 무작정 미국 대륙을 달려서 횡단하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에 보이는 포레스트 포인트에서 멈췄는데 이젠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던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포레스트는 무작정 달린 것 같고 왕모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목적지는 상관없어요
어디로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중요할 뿐이죠

 

이젠 올해가 마무리되는 마당에 16세 소녀의 저 말이 떠오르는 것은 마음속 깊이 저 말이 맞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신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란 말이 있듯이 끊임없이 우리 곁을 파고든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써 걸어왔는 이 길을 잘 걸어왔는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만 왕모 말마따나 목적지는 상관없는 것 같다. 그냥 걸을 뿐이다.

 

왕모.

 

다음에 환생하면 조금 더 나은 인생이 되길 바란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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