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풍요로웠던 마지막 프로젝트

일상

분노하고 분노하라

수지잡스 2023. 12. 7. 08:58

영국의 딜런 토머스(Dylan Thomas, 1914~1953)라고 하는 사람이 지은 시에 나오는 문구인데 이 양반은 중졸에 술주정뱅이였는데 40세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가수 밥딜런이 이 사람에게 영감과 감동을 받아 자신의 이름까지 바꿔 버렸다.

 

 

 

저 좋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세요

 

라고 한국어로 해석이 되는데 원어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이다. 역시 번역을 해 놓으면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 엔지니어링 문서도 번역을 하면 전혀 다른 종류의 문서가 된 느낌과 같은 것 같다.

 

인터스텔라라고 하는 영화에 등장하는 브랜드 교수가 이 시를 인용해서 나도 알게 되었는데 분노라고 하는 단어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인류가 대재앙을 맞아 저항없이 순순히 절멸을 맞이할 수 없다는 의미의 말을 하면서 이 시를 인용했다.

 

 

 

원래 이 시는 딜런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죽음에 맞서서 분노하고 싸워라 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버지, 죽음과 싸워야 해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면 안 돼요 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분노(Rage)란 단어를 사용한 점이 흥미롭다.

 

알다시피 분노는 강력한 감정이다. 살인 중에 치정, 원한과 같은 분노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은 참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무기력하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집단도 분노에 휩싸이면 걷잡을 수 없는 광경은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조금 다른 말이지만 천사와 악마 중에 나는 악마가 더 세다고 본다. 항상 분노해 있는 악마에게 막판에 가까스로 드라마틱하게 천사가 이기는 장면은 익숙한 영화의 장면이다. (근데 만약 신이 있다면 왜 악마를 만들었을까?)

 

꺼져가는 빛에 맞서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살아있으면 분노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가 있을 경우 분노해야 한다.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이런 분노의 감정을 나쁜 쪽이 아닌 좋은 쪽을 사용하면 아주 좋은 경우가 제법 있다. 분노를 자신의 기분대로 발산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실 항상 분노에 휩싸여 생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개인적으로 정신적인 데미지가 크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던 이 분노의 감정을 없애야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엔 운동으로 해결한다. 덕분에 몸무게가 본의 아니게 거의 10 kg이나 빠졌다. 웃긴 게 살이 빠지면 위장도 작아져서 잘 먹지도 않는다. 

 

분노의 감정이 과거로 향해 있을 때는 정말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지나간 일에 분노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기간이면 모르겠는데 어떤 동기가 된 사람이나 상황이 되면 또 그런 감정에 휩싸여 버리면 일상이 곤란한 상황까지 온다. 

 

최근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는 이런 감정에 휩싸인 적이 있다. 아키텍트로써 내가 생각한 대로 진행이 되지 않던가 엉뚱한 의견을 접하면 나도 모르게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 적이 있다. 지금도 조금 그렇긴 하다만 이런 대규모의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타협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그 당시 분노에 의해 내뱉은 말들은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이 나이에 아직 열정이 조금이나마 남아있구나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제는 그런 감정도 많이 사그라들고 소프트웨어의 대가들이 했던 말들을 곰곰이 되새겨보는 중이다. 

시스템은 조직의 구조를 닮는다 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젊을 때는 와닿지 않았던 소프트웨어 관련 문구들이 이제는 바로 와닿는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젠 이런 분노의 감정이 없어지는 게 서서히 내 발로 사회적, 정신적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야 딜런의 통찰력이 조금 이해가 된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Dylan Thomas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노년은 날이 저물수록 불타고 포효해야하기 때문에,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Though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현자들은 끝을 앞두고 어둠만이 지당함을 깨달을지언정

Because their words had forked no lightning they,
자신들의 말로 번개 하나 일으킬 수 없었기에,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Good men, the last wave by, crying how bright
선한 자들은 마지막 파도 곁에서 자신들의 덧없는 행실이

Their frail deeds might have danced in a green bay,
푸르른 바다에서 춤추었으면 얼마나 빛났을 지를 슬퍼하기에,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Wild men who caught and sang the sun in flight,
열광하는 자들은 날아오른 태양에 사로잡혀 노래했으나

And learn, too late, they grieved it on its way,
그것은 지는 해를 두고 슬퍼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에,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Grave men, near death, who see with blinding sight
위독한 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Blind eyes could blaze like meteors and be gay,
멀어버린 눈이 유성처럼 불타고 빛날 수 있음을 보기에,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And you, my father, there on the sad height,
그러니 슬픔의 언덕에 선 당신, 나의 아버지시여,

Curse, bless, me now with your fierce tears, I pray.
바라건대 그대의 모진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해 주세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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