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풍요로웠던 마지막 프로젝트

일상

고수와 하수의 차이

수지잡스 2023. 6. 12. 14:42

프로그램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적 수준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의 사진은 우리 동네에 몇 년 전에 생긴 아파트이다. 이게 아파트라고 하는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고 지은 것인지 죄수들 수감하려고 만든 교도소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데 상당히 잘 만든 아파트라고 신문, 방송에 칭찬이 자자하다.

 

수도, 전기, 도로등의 인프라와 플랫폼만 잘 만들어놓으면 잘 된 아키텍처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인 모양인데 내가 보기엔 이것은 주위 환경과의 조화, 건물 자체의 미적 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의식주의 관점에서 설계되고 만들어진 제품이다. 즉, 기능만 강조한 것으로 소프트웨어로 치자면  확장 가능한 유연한 구조, 모듈 간의 간섭 없는 독립적인 응집성 그리고 사용자를 고려한 UI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동작만 하면 된다는 철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조그마한 빌라는 말할 것도 없다. 비슷비슷한 외향은 둘째치고 조그마하지만 너저분한 마감 처리는 전체 건물의  품질을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구조물이 모두 이 모양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기능만 강조한 우리의 관점을 더 잘 알 수 있는데 산속에 사는 것과 사람답게 사는 것은 다른 것인데 이건 완전히 거지가 산으로 간 꼴로 집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환경에 먹는 음식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만 조리해서 먹고 있는 사람들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조화로운 달관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이 사람들은 생존에만 급급한 것이지 인간적인 존엄성 따위는 관심도 없는 짐승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어떤 관점, 어느 레벨에서 보느냐에 따라 구분과 정의가 다른데 나는 본질적인 기능보다는 

 

디테일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가 둘을 가른다고 본다. 프로그램 초보자/입문자의 경우에도 입이 떡 벌어지게 멋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초보자가 만든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조그만 자세히 쳐다보면 약간 실망할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곳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경험과 관점이라고 본다.

 

소비자 즉, 클라이언트가 감동하는 것은 큰 기능이 아니다. 큰 기능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차이를 벌리는 것은 작은 디테일이다. 근데 이 작은 디테일을 만족시키기위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아주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조그마한 편의 기능을 위해 전체 구조를 바꾸거나 처음부터 예상하고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이것은 하수가 알 수 없는 것이고 아마추어는 이런 것을 혹시 알더라도 적용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프로나 고수들은 이것을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며 이러한 고려 사항이 전체 아키텍쳐에 영향을 준다. 이런 디테일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정부 R&D 사업이 그렇게 투박한 결과물을 생산하고 현장에 적용도 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고수와 하수 정말 종이 한장의 차이다. 하지만 그 종이 한 장에 그려진 디테일의 차이는 수십 년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페이스(Interface) 란 무엇인가?  (0) 2023.06.13
Kontakion of the departed  (0) 2023.06.12
어느 노인과 아들  (0) 2023.06.12
존 카맥 (John Carmack)  (0) 2023.06.12
길 잃은 고양이  (0) 2023.03.28